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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탐방 - 택견의 역사와 흐름, 철학, 전승과 교육 그리고 비전

by 새드낫 2025. 5. 11.

택견 대회 이미지

 

택견(蹶肩, Taekkyeon)은 한국 고유의 전통 무예로서,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 속에 민중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 그리고 철학적 사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오늘날에는 스포츠·교육·콘텐츠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택견의 역사와 기술, 전승 과정,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까지 다층적으로 살펴보며, 왜 이 무형유산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역사와 흐름: 고대에서 현대까지

택견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발견됩니다. 무용총과 각저총의 벽화에는 서로 마주 서서 발로 공격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 학계에서는 이를 택견의 원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택견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민간 중심의 무예로 발전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울 남산골을 중심으로 '택견판'이 자주 열렸으며, 마을 단위의 대항전이 명절마다 벌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싸움이 아닌 놀이이자 축제였고, 마을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국가 주도의 군사 무예가 강조되면서 택견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정신 억압과 함께 금지되기에 이릅니다.

택견의 명맥은 거의 단절될 뻔했지만, 서울 장충동에서 활동하던 송덕기(1893~1987) 선생이 그 기술을 지켜냈습니다. 이후 신한승이 그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체계화하였고, 1983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며 전통문화로 복원되었습니다.

2. 품밟기와 유연한 흐름의 미학: 택견 기술의 철학

택견은 일반적인 무술과 전혀 다른 결을 가집니다. 힘과 속도보다는 리듬과 흐름, 절제와 조화를 중시하는 이 무예는, 철학적으로도 유교적 예절과 불교적 연민, 도가의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핵심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 품밟기: 몸의 중심을 낮추고 리듬감 있게 발을 디디며 움직이는 기본 동작.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타이밍을 재는 데 활용됩니다.
  • 밟기와 걸이: 상대의 발목이나 무릎을 공략해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 어깨치기, 허벅지 걷어차기: 전통 용어로는 '막질'이라 하며, 상대를 제압하되 다치게 하지 않는 절제된 기술입니다.

택견은 전통적으로 공방의 승부보다는 예술성과 교감을 중요시했으며, 그 특성상 경기보다는 시연과 공연의 형식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포츠화되어 규칙을 갖춘 정식 경기로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3. 송덕기에서 대한택견회까지: 택견 전승자와 제도화 과정

택견의 복원과 전승에는 몇몇 중요한 인물과 단체가 존재합니다. 먼저, 장충동에서 택견을 전수받은 신한승(1928~1987)은 이를 문서화하고 기술 체계를 잡아 '대한택견협회'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대한택견회가 공식 창립되며, 전국 단위의 경기 운영, 심판 자격 인증, 교육 커리큘럼 표준화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는 문화재청 산하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관과 함께 택견 지도자 양성 과정도 운영 중이며, 택견 지도사 자격증은 스포츠 지도사의 보완적 자격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송덕기-신한승으로 이어지는 장충택견 계열 외에도, 황해도, 충청도 등 각 지역 전통 택견도 일부 전승되고 있어, 다양한 계보 간 조화와 정리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4. 교육과 콘텐츠로 살아나는 택견

오늘날 택견은 교육 현장에서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서울 한양초등학교, 부산 대연초등학교, 청주 율량고등학교 등에서는 택견을 정규 체육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용인대학교의 무도학과, 단국대·청주대·경희대 등에서는 택견 실기 과목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대한택견회청주에서 전국 택견대회를 개최했으며,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 국제 교류 도장을 운영하며 글로벌 스포츠 무예로의 발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K-콘텐츠 열풍 속에서 넷플릭스 '킹덤', 게임 '배틀그라운드'에 택견 기술이 등장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령층 대상 건강 무예, 스트레스 해소용 치유 프로그램 등 웰니스 산업에서도 택견은 그 가치가 점차 부각되고 있습니다.

5. 과제와 비전: 전통과 현대의 조화

택견은 현재 전통성과 현대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경기화를 통해 대중성과 글로벌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원형 손실이나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또한 지역 전승의 차이, 다양한 계보 간의 갈등, 청소년의 관심 저조, 후계자 양성 체계 부족 등 여러 과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오히려 택견이 살아 있는 유산임을 방증합니다. 문화유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숨 쉬며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택견, 전통과 미래를 잇는 다리

택견은 단지 발차기 무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몸짓 속에 담긴 역사이자, 마을 공동체의 유희였고, 예절과 철학이 깃든 무형의 자산입니다. 저는 택견을 조사하면서, 전통이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문화의 줄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때 사라질 뻔했던 이 무예가, 송덕기라는 한 사람을 통해 다시 피어나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게 됩니다. 택견이 우리 삶의 일부로 스며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문화유산의 현대화'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택견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와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